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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1 (두 손) (Untitled (Two Hands)), 2022, watercolor on polyamide fabric, wood frame, 77x6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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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행위는 어떻게 실천적 역량을 가질 수 있을까. 작업을 하면서 항상 한 켠에 남겨놓았던 질문이다. 이 물음은 보는 행위의 대상인 보이는 것, 그리고 보는 행위의 결과이자 또 다른 보는 행위를 이끄는 그림들에 대한 질문들로 다시 연결된다.

 

이미지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혹은 해야 하는 것이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내 작업은 이미지와, 혹은 이미지가 요구하는 것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그에 앞서, 이미지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지가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얼마전 작업노트에 ‘나의 세계와 외부 세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썼다. 지금은 ‘나의 세계’와 ‘외부 세계’가 존재하는 양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모든 일들을 내 감각기관을 통해 접하고, 그렇게 몸에 익은 방식대로 이해하고 처리한다. 그렇다면 ‘외부 세계’는 더듬어 찾아가야 하는 무엇이거나, 혹은 -오히려- 만들어가는 무엇이 될 것이다. 어쩌면 없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외부 세계’는 ‘나의 세계’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흔들리면서 형태를 바꿔가는 영토 자체라고 다시 정리해본다. 사진 이미지들과 사진 이미지들을 다룬 그림들, 작업 과정 모두가 외부 세계에 대한 단서이자 가설이다. 단서이면서 가설이라는 점이 재미있는 점이다. 모든 것이 한번에 부정될 수 있다. 사진은 현실의 ‘단편’, 조각이겠지만 그러한 존재 조건에 근접하기 전까지는 단서나 가설로 남는다. 

‘세계’를 더듬어 찾아가거나 만들어가는 일 자체가 중요한 만큼, 보는 행위가 함께 중요해진다. 최근에 나는 과거의 이미지-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가지고 작업하기 시작했다. 작업을 하면서 거기에서 보이는 것에 대해, 그것의 정체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한다. 애초에 그것을 보고 그리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사실상 이것이 이 작업의 동기이고, 전부이다. 한가지 보태자면, 나의 그림들 속에 그 이미지를 남기고 싶었다는 것 정도. 

작업 중에 반복되는 행위들과 그에 의해 중첩되는 이미지를 통해서 ‘보기’와 그 시간이 드러난다. 사진 이미지를 여러 방식으로 조각내고 다시 연결시키면서 원본과 상이한 색과 질감, 무게가 부여된다. 하나 하나의 그림들은 ‘보기’의 순간을 물리적 공간 안에 길게 늘어놓는다. ‘보기’를 지속시킬 것. 나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그 이미지’의 시간을 붙잡고 있는 것에 일단 집중한다. 

_2022년 3월, "눈 연구 2-운동"  전시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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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3 (빨간 눈) (Untitled (Red eye)), 2022, 

cotton yarn embroidery and watercolor on polyamide fabric, digital printed paper, wood frame, C-clamp, 77x67cm, 2022